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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산책

강변북로

by 후연 2024. 8. 13.

 

 

 

강변북로_강인한

 

 

내 가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이 지나갔다.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저 달의 운필은 한 생을 적시고도 남으리.

 

이따금 새들이 떼 지어 강을 물고 날다가

힘에 부치고 꽃노을에 눈이 부셔

떨구고 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밤이면

검은 강은 입을 다물고 흘렀다.

강물이 달아나지 못하게

밤새껏 가로등이 금빛 못을 총총히 박았는데

 

부하의 총에 죽은 깡마른 군인이, 일찍이

이 강변에서 미소 지으며 쌍안경으로 쳐다보았느니

색색의 비행운이 얼크러지는 고공의 에어쇼,

강 하나를 정복하는 건 한 나라를 손에 쥐는 일.

 

그 더러운 허공을 아는지

슬몃슬몃 소름을 털며 나는 새떼들.

 

나는 그 강을 데려와 베란다 의자에 앉히고

술 한 잔 나누며

상한 비늘을 털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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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을 따라 북쪽에 난 자동차 전용도로를 가리켜 강변북로라고 하는데요. 여름 새벽 한강북로를 달리자면 푸르름 속에 잠긴 강의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요. 한강은 커다란 짐승처럼 비늘을 뒤채며 깨어날 채비를 하지요. “강물이 달아나지 못하게/밤새껏 가로등이 금빛 못을 총총히 박았는데”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이 강변북로는 많은 사연을 안고 있죠.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최고 권력자와 내연관계였던 여인이 이 강변북로에서 총 맞아 죽은 일이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강은 묵묵하게 말없이 흐릅니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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