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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감상, 평21

물가에 목란배를 매어두고 . 2022. 1. 14.
난, 삼천원짜리 국밥집을 하고 싶다 난, 삼천원짜리 국밥집을 하고 싶다 / 채정화 배고픈 나그네도 마음놓고 외상으로 먹을 수 있는 곳 외상장부엔 국밥 한 그릇 삼천원, 대신 알아보기 쉽게 특징을 적어놓고 가끔 떠올려 보며 안녕을 기원할 수 있는 그런 비밀문서 같은 장부를 만들고 싶다 주머니 만지작거리지 않아도 거침없이 문발 밀고 들어와 아줌마! 여기 국밥 한 그릇 줘요! 깍두기 좀 넉넉하게 주쇼~! 싱싱한 소리가 푸른 나뭇잎처럼 뻗어 나가는 곳 남루한 옷도 주변 눈치 볼 일이 없으며 오랜 객지생활 끝내고 고향집에 돌아온 듯 고단한 일상을 흠뻑 땀으로 쏟아낸 후 휘파람을 불며 일터로 향할 수 있는 속정이 넘치는 국밥집을 열고 싶다 쓸쓸한 노인에겐 살가운 딸처럼 몽울몽울 흰 구름 한 스푼 넣고 커피 한 잔, 정성껏 저어 대접해 올리리라 그렇게.. 2019. 3. 7.
내 방(房) 내 방(房) / 채정화 오늘도 우유를 마신 하늘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안부를 전해온다 이따금 지나가는 구름이 간간 미소 짓는다 마주 보이는 하얀 침묵에 잠긴 산이 손을 흔든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로, 나른한 햇살 베란다에 한참 몸을 눕히고 하품하며 쉬어가면 곧이어 새들 날갯짓 부산하게 지나간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해맑은 아이들 웃음소리 가끔 스쳐 가는 바람도 기웃이 들여다보고 맑은 가슴 활짝 열어 보인다 내 방은 결코, 혼자라도 조용하지 않다 내 방 안엔 나 아닌 그 누군가가 함께 산다. ---------------------------- 꾸밈이 없어 보이는, 시라는 느낌... 란 말은 내지, 는 말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살펴보면, 그저 그럴듯한 혹은 알쏭달쏭한 낱말들을 골라 가식으로 떡칠을 한 시들도 그 얼.. 2019. 3. 7.
환상통 환상통(幻想痛) / 채정화 또, 발을 잃었다. 외발로 잃은 발을 찾아 나선다 이번에 잃고 난 뒤엔 상실감에 한참을 빠져지냈다 끝내 한 발을 남기고 떠나버린 발이 야속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곧, 뿌리를 내려 푸른 줄기로 쭉쭉 뻗어 올라야 하는 것을 왜 떠나야 했는지 심경을 헤아릴 순 없지만, 별 밭을 호미로 뒤적이며 찾기도 했고, 혹은 바람 부는 숲을 미친 듯 헤매기도 했다. 마른 풀들이 수런거렸다 부디 잃은 발을 찾을 수 있게 하소서 성호를 긋기도 했다, 지체할 시간이 내겐 없다 발을 찾아야 제대로 심장이 뛸 것이어서 찾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원치 않는 쪽에 돋아난 휘어진 뼈를 안고 비틀거릴 것이기에 기필코 찾아야 한다 그 무엇보다 외발로는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것 이젠 .. 2019. 3. 7.
물을 읽는다 물을 읽는다 / 채정화 물 위로 아침이 온다 붉은 눈빛의 해가 뜨고 수초처럼 흐느적 한나절이 건너간다 아른아른 부서지며 물속엔 세상이 거꾸로 서 있고 물 위에서 저무는 저녁을 맞는다 푸르게 슬픈 이마가 보일 듯 말듯 달이 내려앉아 있다 구불구불 흘림체로 문장이 흐르고 휘적휘적 .. 2019.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