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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56

비 내리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 참았던 울분처럼 사무쳤던 그리움처럼 오늘도 가출했던 마음이 어둑한 곳을 둥둥 떠다니다가 싸늘하게 식은 자리로 돌아와 눕는다 늘 그랬던 것도 같고 언제부턴가 생긴 고약한 버릇 같기도 하고 암튼 어쩌다 동료? 동무? 암튼 고여있던 퀴퀴한 언어를 마구 쏟아내 놓고 자괴감에 빠진다 우울한 건 그렇다 치고 왜 이렇게 점점 삭막해질까 안에서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한 습기는 좀처럼 형편이 나나이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때가 되면 바닥을 구르는 저 나뭇잎 신세가 될 일 마치 나 아닌 다른 인격체에 송두리째 점령당한 듯 내가 낯설고 끔찍하다 이건 매우 불신앙적인 전형이라고 꾸짖는다 내가 나를 위로한 지 오래다 나를 해부하고 분석하고 급기야 비난하고 오래 부끄러워한다 왜 오랜 세월을 허비하며 이렇게 스스로를.. 2021. 11. 8.
그냥 계절도 코로나에 혼쭐이 난 듯 제 정신이 아니다 여름을 걸었는데 겨울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비현실적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마음에 때가 묻고 있다는 것 그러나 어쩌랴 길고양이도 아픈 새끼를 물어 동물병원에 던져 넣는 모성애라는 본능에서 명색이 인간인 나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을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아이들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하루, 하루 꿈속을 거닐다가 냉혹한 현실 찬바닥에 던져졌다는 느낌 마른풀처럼 쇠잔해가는 나 많이 살았다는 생각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2021. 10. 16.
그리움, "왜 사랑하나요?"라는 문장은 문법적으로 옳다. "어떻게 그를 사랑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도 문법적으로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말들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 사랑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댈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먼 훗날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났던 내 동료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A4 용지를 건네던 그녀의 손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 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건 A4 용지 때문도 그녀의 손 때문도 아니었으리라. 대답하자면 그건 그냥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 높고 푸른 사다리 中 / 공지영 믿을 수 없는 일은 무성한 가시들이 일제히 날을 세워 그에게 다가가면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되곤 한다 때로 사랑이라는 핑계로 폭력적.. 2021. 4. 21.
깊은 밤에, 한 가지 것에 마음 붙이고 그 속으로 깊게 들어가 살고 싶었지. 그것에 의해 보호를 받고 싶었지. 내 마음이 가는 저이와 내가 한 사람이라고 느끼며 살고 싶었어. 늘 그러지 못해서 무서웠다. 그 무서움을 디디며 그래도 날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그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였지. 하지만 이제 알겠어. 그건 내가 인생에 너무 욕심을 낸 거였어. - 깊은 슬픔 中 / 신경숙 2021. 4. 17.
오늘은, 다 지나간다. 봄날이 가듯....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변질로.. 다 그렇고 그런 게 세상이더라 정치계의 허무함을 보며 더욱, 살아봐야 알겠지만, 일단 출발은 괜찮았다 괜찮다는 기준은? 일찍 일어났다는 거, 하지만, 실효성이 있었는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고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낸다면 출발 운운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상처에 바셀린 크림을 듬뿍 발라놨더니 부위가 많이 줄고 일부분만 피부 껍질이 이리저리 밀린다. 쓰리다 그러고 보니 어젠 너무 분주하게 나댔다 밥 먹을 사람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극성을 떨었는지..심한 두통도 문제였다 그래서 더 집중력도 떨어지고 어질어질 했으니까 화상으로 연결된 것 불을 다룰 때 특히 더 조심을 해야 한다 어제만 해도 기름을 끓여 생선을.. 2021. 4. 10.
저녁.. 하루가 설렁설렁.. 숭숭 구멍 뚫린 곳으로 빠져나가 듯, 거의 떠나고 껍질 같은 부분 조금 남았다 난, 이상한 습관이 반찬도 있을 땐 왕창 한꺼번에 몇 가지를 없을 땐 궁상맞을 정도로 없고.. 오늘은 나갔다 와야지 하고 기껏 준비만 하고 종일 반찬만 만들었다 된장이랑 월계수 잎 생강넣고 수육을 삶고 생선을 튀기고 아욱국을 끓였다. 큰 솥에 한 솥을.. 아득했다. 이걸 언제 누가 다 먹어.. 옆에 할머니들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든다 아니야 냉장고 넣어두고 필요할 때 데워먹지 하기싫을 땐, 손 하나 까딱하기 싫으니까 너무 편지 글로만 쓰면 상대가 질릴 거 같아서.. 그리고, 어떤 압박감도 느낄 거 같아서 마치 올가미에 걸어두고 넌, 꼼짝하면 안 돼, 하는 거처럼 가끔, 일기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내 맘대로.. 2021. 4. 9.
소음, 늘 북적이며 소음이 떠나지 않던 위층이 조용해진 것이 꽤 여러날 된 듯싶다 약간 지능이 모자란다는 여자가 손자라고 아기를 유모차에 끌고 다닌지가 몇 해 전이다 그러고 보니 같이 승강기에 탔다가 머루알처럼 까만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는 아기를 보며 아기가 예쁘네요 했다가 아줌마, 아줌마는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말의 파편에 맞아 식겁을 한 후엔 마주쳐도 시선을 피했다 아기를 업고 어르며 지나기도 하고 이른 새벽부터 죽음에 임박한 듯 자지러지게 아기가 울기도 했다. 신고를 해야 하나 몇 번이나 망설이다 그만 두던 나로서도 참 난감했다. 두 사람이 다 정상인이 아니다 보니 그 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어떨까 싶은 것이 아기를 향해 악쓰는 소리, 숨 넘어갈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일상이었다 무슨.. 2021. 2. 9.
잔잔한 시간은 멈추는 순간이 없었다 계속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갔다 그 속에서 상처도 아픔도 몽돌처럼 둥글어지고 있는 듯했다 행복이랑은 약간 결이 다른 평안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감싸주는 날이 있는가 하면 불안으로 심장이 바짝 조여드는 날도 있었다 겨울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그랬다 무기력하다 이런 말은 쓰지 않기로 나와 약속을 했다 나의 몫을 담담히 살아내고 있는 중이야 누가 물어오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봄엔 눈이 떠졌다 작은 등이 반짝, 켜지는 느낌이랄까 난, 봄의 아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봄에 태어났고 그래서일까 봄은 내 것처럼 편안하다 조금 더 너그러워질 거라고 다짐도 하지만 잘 지켜지진 않는다. 그래도 그러리라 다시 다짐을 한다 요즘 들어 잠이 들었나 하면 1~2시에 꼭 눈이 떠져 잠을 이루지 못한.. 2020.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