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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산책148

미로 미로어떤 그리움이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미로를 만들었을까요별 하나가 겨우 지나가도록별 같은 눈빛 하나가 지나가도록어떤 외로움이강물과 강물 사이 꿈같은 다리를 얹어발자국 구름처럼 흘러가도록그 흔적 아무 데도 없이맑은 별 유리처럼 스며들도록가면 속 신비한 당신의 눈빛이나만 살짝 찾을 수 있도록어떤 사랑이이토록 실핏줄처럼 살아 있는 골목을 만들었을까요  문정희 詩 2024. 7. 16.
종소리 안에 네가 서 있다 출처 : 김경애. 풍순     종소리 안에 네가 서 있다    장옥관(1955~)  조약돌 주워 호수에 퐁! 던졌더니동그랗게 무늬가 생긴다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끝도 없이 생긴다 종소리 같다 물무늬처럼 번지는 종소리종소리처럼 번지는 내 마음 종소리 안에 온종일네가 서 있다 ..............................................................................................................................    작고 동글동글한 돌을 주워서 호수에 던져보는 시인이 있다. 호수의 수면에는 물방울이 튀고 물무늬가 생겨난다. 동심원의 물결은 연달아 일어나고 차차 넓게 퍼져 간다. 시인은 파문(波紋)을 보면서 아득한 허공에.. 2024. 6. 27.
겨울에 그린 연두 출처: 슬기둥 (Seulgidoong) - 주제   겨울에 그린 연두    한영수   입이 틀어 막히며 네 발이 들리며거부를 거부하며 연두가 눈을 뜬다 경계에 경계 없이중력에 중력 없이어느 날은 제자리걸음물끄러미 뒤도 쳐다보면서연두는 연두를 경영한다 비탈이거나 웅덩이병실에서 좌판에서독방의 창가에서겨울나무 끊어진 높이에서 한꺼번에 아름다워지지는 말자밀리며 밀어붙인다조금씩 살다보면조금 더 살아진다주름이 생기고 관절에 통증이 올 때까지모든 하루를 지나갈 모양으로 돌풍인지 안개인지 작은 씨앗인지 모르는연두의 영토 빛깔을 발음할 때마다마른 가슴에 마실 물이 고인다           ―계간 《문학인》 2024.여름-------------------한영수 / 전북 남원 출생. 201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 2024. 6. 17.
바다 옆에 집을 짓고 출처 : Teodora Vasilichi    Your Love - Lyrics - Ennio Morricone - Dulce Pontes   바다 옆에 집을 짓고          한기팔(1937~2023)  바다 옆에집을 짓고 살다 보니까밤이면파도소리, 슴새 울음소리 들으며별빛 베고섬 그늘 덮고 자느니그리움이 병인 양 하여잠 없는 밤늙은 아내와서로 기댈따뜻한 등이 있어서천에 기우는 등 시린 눈썹달이시샘하며 엿보고 가네.  .....................................................................................................................................................    한기팔 시인.. 2024. 6. 15.
바람 부는 날 Cantilena - Koen De Wolf출처 : Sung Eun Hwang  바람 부는 날 / 김종해​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운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 김종해,『그대 앞에 봄이 있다』(문학세계사, 2.. 2024. 6. 4.
푸른 밤 출처: PASTEL TV   푸른 밤 / 박소란​짙푸른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말없이 떠나간 밤을이제는 이해한다 시간의 굽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이하나둘 사라지는 것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돌이킬 수 없는 건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돌이킬 수 있는 일 따위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잠시 가슴을 두드려본다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행성에 노크를 하듯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아름다웠노라고,하늘로 손을 뻗어 빗나간 별자리를 되짚어볼 때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이 모든 걸 알고도 밤은 갔다그렇게 가고도아침은 왜 끝끝내 소식이 없었는지이제는 이해한다그만 다 이해한다 2024. 5. 24.
당신이 떠난 뒤로는 당신이 떠난 뒤로는...  도종환  당신이 떠난 뒤로는빗줄기도 당신으로 인해 내게 내리고밤별도 당신으로 인해 머리 위를 떠 흐르고풀벌레도 당신으로 인해 내게 와 울었다 당신 때문에 여름꽃이 한없이 발끝에 지고당신 때문에 산맥들도 강물 곁에 쓰러져 눕고당신 때문에 가을 빗발이 눈자위에 젖고당신 때문에 눈발이 치고 겨울이 왔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남은 자의 편이 되어떠나는 것이다 떠나야 한다 속살대지만나 하나는 당신 편에 오래오래 있고 싶었다 이 세상 많은 이를 남기고 당신 홀로 떠난 뒤론새 한 마리 내게는 예사로이 날지 않고구름 한 덩이 예사로이 하늘 질러 가지 않고바람 한 줄기 내게는 그냥 오지 않았다 2024. 5. 17.
목련 목련     이대흠(1967~ )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    그 이름이 하 맑아 그대로 둘 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그냥 푸른 하늘로 놓아두고 맺히는 내 마음만 꽃받침이 되어야지 목련꽃 송이마다 마음을 달아두고 하늘빛 같은 그 사람을 꽃자리에 앉혀야지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이 폈겠냐고 그리 오래 허공으로 계시면 내가 어찌 꽃으로 울지 않겠냐고 흔들려도 봐야지    또 바람에 쓸쓸히 질 것이라고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이라고...................................... 2024.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