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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56

까짓 김장, 까짓, 김장 가볍게 시작한 김장, 김장이라야 20k 김치통으로 2통 정도이다 우리 김치통이 엄청 크긴 하지만 배추 7~8포기 정도? 남들 다 하는 거 나라고 못할까 싶어 장을 보고 마늘을 찧고 생강 껍질을 벗기고.. 이런 것들은 사실 미리 해놓았으면 참 좋을 뻔했다 쪽파를 다듬고 무채를 강판으로 갈다가 칼로 채를 썰다가 법석을 떨면서 아무도 안 불렀다 그 치다꺼리도 만만치 않고 밥 해먹이고 수육도 엄청나게 삶아야 하고 또 하나 나를 확인해 보고도 싶었다 이 정도도 해결하지 못할까 하면서 어떤 오기 같은 것도 끼어들었다 생강 껍질 벗길 때부터 삐끗하던 손목 어깨가 사실 무를 들고 앉아 이 무를 어쩐다지 이럴 때 귀인이 나타나 준다면 기다리던 귀인은 나타나 주지 않고 대신 무채는 두 개만 나머지는 믹서기에 .. 2022. 11. 24.
잃는다는 거, 내 주변의 어떤 사소한 것들도 나름의 혼魂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카카오 측 사고로 인해 초토화 된 이곳이 영영 복구가 안 되면 어쩌나 불안했고 몸 한 부분이 훼손된 듯 불편했다 막상 있을 땐 모르고 지낸 곳이 내게 이렇게 큰 의미가 있었다니 때로 메마른 잎이 되어 버석거릴 때 속절없이 지난 날들을 들춰보다 어둑한 독백을 쏟아내다 하염없이 머물러 있던 곳 문득, 솟아나는 몽울몽울한 감정을 슬쩍 흘려 놓곤 했던 이곳을 잃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불안하고 초조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이리저리 떠돌았다 잃어버린다는 건 결국 견딜 수 없는 상실감에 빠져 아득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 하는 일이다 2022. 10. 18.
그냥, 그냥, 이라는 말 참 좋다 그냥, 오고 싶었어 무심히 아무렇지 않게 툭, 그냥, 니가 보고 싶었어 상대의 반응에 상관없이 저절로 긴장이 풀리는 말 조금 민망한 일이 생겨도 그냥, 얼버무릴 수도 있는 잠시, 현실을 잊고 바람처럼 나부낄 때 슬몃 다가가 갑자기 니 생각이 나서 그냥, 만나고 싶었어 훌훌 털고 그냥, 이라는 편안함 속에 묻히고 싶다 고달픈 삶 휴식처럼 그냥,이라는 말 묵묵히 니가 곁에 있어 준다면 아무말 하지 않아도 천 마디 위로보다 따스한 기운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차가운 내 삶 속 고루 스며들 거 같아 살다 보면 그럴 때 있어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한 날이 이 넓은 세상 뎅그머니 홀로 남겨진 듯 외로운 날 성큼 뛰어들어가 그냥, 오고 싶었어 열 번 스무번 해도 싫지 않은 말.. 2022. 10. 5.
얼마나, 김재진,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문이 닫히고 차가 떠나고 먼지 속에 남겨진 채 지나온 길 생각하며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얼마나 더 가야 험한세상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 아득한 대지 위로 풀들이 돋고 산 아래 먼길이 꿈길인 듯 떠오를 때 텅 비어 홀가분한 주머니에 손 찌른 채 얼마나 더 걸어야 산 하나를 넘을까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 젖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얼마나 더 가야 네 따뜻한 가슴에 가 안길까 마음이 마음을 만져 웃음짓게 하는 눈길이 눈길을 만져 화사하게 하는 얼마나 더 가야 그런 세상 만날 수가 있을까 2022. 9. 1.
그냥, 뉴스 보며 깜짝 놀랐다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변을 당하고 도로가 자동차며 사람을 마구 삼키는 거대한 강이 되고 캄캄한 하늘에서 무섭게 쏟아지는 물폭탄을 빗소리가.. 어쩌고 할 때가 아니라는 한가한 소리 한 것이 갑작스럽게 끔찍한 일을 당한 이들에게 얼마나 미안해지는지.. 나의 초라한 실체도 환히 보인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아이들도 외면하며 떠나버리고 폐지 한 묶음으로 버려진 듯한 잘난 체 떠들고 남을 비판하고 내 헐벗고 비루한 모습은 왜 그동안 보이지 않았을까 어미가 현명하고 지혜로워서 깊은 신앙으로 잘 이끌어 줬더라면 오늘의 이런 현실은 없었을까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잠을 자도 졸립고 하루가 전에 하루랑 결이 다르다 항생제를 이렇게 오래 먹어도 될까 가끔 오한과 메슥거림도 동반된다 끈질기게.. 2022. 8. 11.
다시 여름,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던 비 떠나고 하늘이 활짝 웃는다 기웃이 들여다보는 하늘이 모처럼 제 빛깔을 찾았다 꽃잎처럼 흩어져 있는 구름 송이송이 축하라도 하듯이 그래도 난 비가 좋은데 잡을 수 없었다 창문 바싹 다가 와 축축하지만 슬프지 않은 빗소리를 밤새 연주해줘서 꿈도 없는 다디단 잠을 잘 수도 있었는데 장마가 물러갔다는 앵커의 보도가 사실인 듯싶다 그 어디에도 웅크리고 있던 어둑한 구름 한 점 없이 그늘이라곤 없는 아이 얼굴처럼 투명하다 아 정말 좋구나 순하게 머물다 간 장마에 고맙다 안녕, 한 번 다녀가면 몇 날 기다려줬다가 뜨거워진 바닥을 빗물로 식혀주곤 했으니 보기드문 착한 장마라고 불러줄까 너무 멀리 가지 말고 폭염으로 지친 사람들 시원한 빗줄기로 가끔씩 다녀가 주렴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으.. 2022. 7. 25.
그냥, 하늘이 잿빛 보자기를 씌운 듯 답답하다가 산발적으로 비, 흩뿌리다 쏟아지길 반복 아, 빨래를 해야 하는데 빨랫감은 매일 나오고 뜨거운 햇빛도 없는데 열대야다 후끈후끈 습도까지 높아 끈적거리고 여름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지친다 문득, 엄마가 가꾸던 싱싱한 옥수수 밭이 그립다 밭둑에 서면 솨솨 시원한 바람 소리를 들려주던 그 옥수수밭 여름날 땅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우물물에 오이 채 썰어 넣고 깨 듬뿍 뿌려 말아주던 시원하고 쫄깃한 엄마표 국수가 먹고 싶다 늦은 저녁, 종일 내리던 비가 잠깐 멎었길래 동작 빠른 척 마트엘 갔다가 이런, 그 사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성미 급한 장맛비가 쏟아진다 숨 넘어가는 사람 비상약 사러 간 것도 아니고 마트 입구에서 우두커니 무심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툴툴거.. 2022. 6. 30.
장마 오래 빗소리에 고갈되어있다가 드디어 달려든 빗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쏴쏴 바람소리 닮은 빗소리 이제야 조금 살 거 같다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말에도 폭우가 있었네 켜켜이 쌓인 묵은 말 사태, 홍수 때론 갇혀있던 말들이 소리치며 쏟아지기도 한다 직선으로 사선으로 거꾸로 거침없이 무례하게 한데 뒤섞여서 무더기로 쏟아진다 둑이 무너져 애먼 생명 다쳤겠다 가끔은 장마가 반갑다 우선 움직일 때마다 푸석거리던 먼지가 사라졌다 그것은 폐, 심장 그쪽의 반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아님, 뇌.. 호흡이 가쁘고 숨이 막히기도 했으니까 귀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건 왤까 종일 정신까지 소란스럽다 질병과 노화는 신의 진노임이 분명하다 하와 할매가 사악한 뱀에게 미혹당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볼성사나운 형벌은 면했.. 2022.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