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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을 찧다가 마늘을 찧다가 / 채정화 냉장고 정리를 하다구석에 방치된 마늘을 본다 군데군데 여린 속살이 짓물러 생채기가 났다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스밀 때마다 오그라드는 심장 바짝 웅크렸다 늘렸다 제 몸끼리 비비며 얼마나 안간힘으로 버텼을까 변방에서부터 시작된 부패 끈적하게 묻어나는 회한,슬픔도 때론 풍화될 수 있을까 허물어진 상처마다 도려내 고요히 제 몸 던져 헌신하는 혼, 나는, 누군가에게 잠잠히 내 혼魂 녹여 텅 빈 영혼의 허기 채워준 적 있었나 밤새 외로움에 몸을 떨며우는 이와 함께 울어준 적은 있었을까 폐부로 스며드는 향기 맵다 부박한 내 삶에 호된 질책 같은, 오래된 무쇠 압력솥을 수세미로 닦고 국냄비를 닦았을 뿐인데 오른쪽 팔이 아파 들어 올리기도 버겁다 미뤄두었던 건강검진을 더는 미룰 수없어 가장 추웠.. 2018. 11. 2.
감자를 썰다가 감자를 썰다가  /  채정화 서툰 칼질로 감자를 썰다가그만, 손톱을 썰었다 다행히 손톱에 찰싹 붙어있던 여린 살갗이 무사하다단단한 껍질인 손톱이 저 날 선 칼날을 막아내지 못했다면,아찔하다. 온몸에 소름 돋는다 딱딱한 손톱을 거침없이 자른 칼날이말캉한 살갗 앞에서 어떻게 멈출 수 있었을까거기까지!라고 급하게 뇌가 명령했을까 놀란 가슴으로 다시 들여다본다손톱이 절반가량 수직으로 깊숙이 잘려나갔다보고 또 보아도 놀랍다 모든 역할과 기능을 묵묵히 수행하는 내 몸을 지키는 가련한 것들의 수고가 새삼 눈물겹다칼날이 춤추는 섬뜩한 세상벼랑 끝 절망의 늪에 빠질 때마다힘껏 끌어안아 주는 또 하나의 나, 왼쪽 어깨가 아프면오른손의 체온이 아픈 어깨를 감싼다혼자인 듯 난 혼자가 아니다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 2018. 10. 5.
은화과 은화과 (隱花果) / 채정화 수심愁心 깊은 곳물살 해적일 때마다 너울너울 슬픔 드리우는 그대여 저물녘 강바람 물내음 안고 봄풀처럼 투명한 얼굴로 나 그대에게 가겠네 꽃잎 한 장으로 몸 뉘일 수 있다면 평생창이 없는 조붓한 곳이어도 좋겠네 매 순간 차오르는 붉은 고백 어둑한 삶의 행간마다촘촘히 걸어두고 싶네 나, 다시 태어나도 그대 푸른 잎 겨드랑이 연두빛 촉수로 숨 쉬고 싶네 2018. 10. 5.
우물 우물 / 채정화 우물에도 풍경이 있지 까만 하늘에 푸른 별이 뜨고 후두두, 빗물 뿌리는 구름도 살지 무시로 지친 바람이 머물다 가고 잠시 고단한 삶이 흔들고 지나도 아득한 그리움에 얼굴 묻는 일이지 살면서 때론 말 못 하는 일이 있지 달빛에 미끄러지듯 심장이 먼저 가는 일이지 숨 쉬는 매 순간 꽃을 피우기도 하지만 어둠으로 단단해진 벽을 두드리는 일은 가뭇없이 이어지는 의문부호 같아서 저 홀로 앓는 속울음이었지 출렁출렁 물빛 언어를 채록하며 저 홀로 깊어가는 우물이 있지 오월의 비, 비가 잦다. 계절의 여왕이 울보인가 하늘도 슬퍼서 비가 내린다고 웅얼거리다가 그만 울어버렸다 4월엔 미숙씨가 하늘로 주소를 옮기고 5월 마지막 날엔 우리랑 같은 벽만 허물면 한 방이 되는 옆집 내가 엄마처럼 의지하던 분이 또.. 2018. 10. 5.
김민기 추모곡 2018.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