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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수필

여백

by 후연 2018. 11. 24.




     

  여백(餘白)  / 채정화

 



여러 날을 지나면서

책 한 페이지 넘기는 것도 힘들었다
한 때 단시간에 누가 책을 많이 읽나
시합하던 적이 있었다


친구 중 유독 책 한 권을 하루 만에
뚝딱 읽어치우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별명이 움직이는 백과사전이었다


비결을 물었더니 대각선으로 두 번 훑으면
내용이 다 파악이 된다는 놀라운 신통력이다

몇 번을 시도해보다
자기만의 방법이 있는 것 같아
정독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젠 흑과 백의 자잘한 활자체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해서, 나름 선호하는 책이 있다
바람을 앞세우고 오솔길을 걷는 듯
편하고 순한 느낌의 책이 좋다는 거다

좋은 책은 읽을수록 마음이 맑아지고 행복해진다
삶의 여백이란, 마음에 길을 내자는 거다
작가와 함께 가볍게 산책하며 조곤조곤 말을 걸어오는
담장 밑에 애기똥풀을 만나자는 거다


삶이란 그것을 가꿔갈
정직하고 따뜻한 능력이 있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어떤 꽃다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길귀신의 노래 (곽재구)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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