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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수필

마늘을 찧다가

by 후연 2018. 11. 2.

 

 

 

 

 

 

 

마늘을 찧다가  / 채정화

 

 

 

 

냉장고 정리를 하다구석에 방치된 마늘을 본다
군데군데 여린 속살이 짓물러 생채기가 났다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스밀 때마다 오그라드는 심장
바짝 웅크렸다 늘렸다 제 몸끼리 비비며
얼마나 안간힘으로 버텼을까

 

변방에서부터 시작된 부패 끈적하게 묻어나는 회한,슬픔도 때론 풍화될 수 있을까

 

허물어진 상처마다 도려내
고요히 제 몸 던져 헌신하는 혼,

 

나는, 누군가에게 잠잠히 내 혼魂 녹여 텅 빈 영혼의 허기 채워준 적 있었나

 

밤새 외로움에 몸을 떨며우는 이와 함께
울어준 적은 있었을까 폐부로 스며드는 향기 맵다
부박한 내 삶에 호된 질책 같은, 
 
 

오래된 무쇠 압력솥을 수세미로 닦고

국냄비를 닦았을 뿐인데

오른쪽 팔이 아파 들어 올리기도 버겁다

 

미뤄두었던 건강검진을 더는 미룰 수없어

가장 추웠던 지난 금요일에

병원엘 갔었다. 늘 집에만 있었던 탓인지

몇 가지 검사를 받으며 내 몸 안에 복잡한 구조를

이렇게 해서 다 들여다 볼 수 있을까

 

뇌만 해도 그 수많은 굵고 가늘게 얽힌 혈관들

장기 구석구석.....하지만 면밀한 검사를 원치 않는다

어차피 내 떠날 날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을 터

이상을 밝혀졌다 해서 수명을 억지로 늘릴 수도

헤집고 잘라내고 봉합한 채 극악스럽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거 같다. 이제야 병원을 그렇게 거부하던 엄마가

이해가 간다. 순리대로 살기를 고집했다는 것을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 게

하나 둘이 아니지만,

나에 대한 애착을 조금씩 놓고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 일 거다

불확실한 잡히지 않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

내달리던 그 세월 속에서

큰 아이 작은 아이들이 짝을 만나고 우여곡절 속

인생의 쓰디쓴 경험을 하는 동안

오래전 내 역할은 끝났거니 했던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어미와 자식이라는 탯줄은

생명이 연장되어 있는 동안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도

허기를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이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헛헛한 빈 터라는 것도

미안하고 미안한 일이다

 

내 불행이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전가되었다는 것을

이 세월의 끝에서 아프게 실감하는 것도

내가 약해진 탓인지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일인지

 

반듯하게 집을 짓고 건강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우리 아이들 또래의 삶을

티브이 화면에 가득 펼쳐져있는 모습에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좋은 부모 만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고 잘 자랐다는 결과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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