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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수필

by 후연 2018. 11. 2.

 

 

 

 

섬 / 채정화

 

 

 

캄캄한 바다에 붉은 달이 떠오르면

찰칵, 섬 하나가 열린다
눈빛에 차르르 윤기가  돈다


종일 눈 감고 있던 것들이 하품하며 일어나고
젖은 몸을 털며 꾸덕꾸덕 말라가던 빨래도
우두커니 현관문만 바라보던 벽도 할 말이 많다

 

윙윙...차르륵 세탁기가 열심히 하루의 기억을 지워내고
침묵하던 시간이 잠깐 소란스럽다

 

섬과 섬 사이 자욱한 물안개  

 

밀려가고 밀려오던 물결 잦아들고

끝내 하얀 포말로 소진된 채

그대의 슬픈 바다는 시린 달빛을 베고 길게 눕는다  

 

하나둘 불빛이 사라지고 다시 휩싸인 고요
출렁출렁 물소리 가득한데


오늘도, 잠들지 못하는 섬 하나.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낙서라도 주절주절 쓰던 때가 좋았구나 싶다

이것도 저것도 써지지 않는다

말이 꼭 되어서 썼던 것도 문장력이 빼어나 누군가에

반드시 감응을 주었던 일도 아닌 듯한데 희한한 것이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던 걸까

이를테면 이렇게 시시한 것들은 시시한 것들끼리 엮어

흔한 연습장 용도로 쓰다가 버리면 될 텐데

 

며칠 전 모처럼 바닥을 밟아보려고 내려갔다가

가뜩이나 이리저리 금 간 질그릇 박살이 날 뻔했다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어둑할 즈음 주차장을 가로질러

늘 걷던 코스로 접어들다가 현관문을 안 잠근 기억에서 급해진 나머지

차량 차단 블록에 발이 걸리면서 오지게 바닥이랑 맞짱을 떴다

번쩍 번개를 맞은 듯 어딘가 갈라지는 듯한 끔찍한 통증과 함께

아, 죽진 않았구나 감각이 살아있어 이렇게 욱신거리는 걸 보니

 

난 넘어져도 절대 내 몸 방어를 못 한다 온몸에 힘이 빠져있는 고로

아슬하게 골절은 피하지만 대신 무거운 내 돌머리가 피해를 본다

한참을 주저앉아 일어나지도 못하다가 발을 바닥에 내밀고 일어나 봤다

이유 없이 두들겨 맞은 듯 억울함이 수치감과 함께 밀려오는 것이

넘어진 후 따라붙는다는 걸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불행 중 다행 부러진 곳은 없나 보다

욱신거리는 무릎을 내려다보니 처참했다 짓이겨진 살갗에서

진홍빛 핏물이 뚝, 뚝

 

이튿날 지난번 임플란트 시술했던 치과를 찾았다

음식이 안 씹어져요 그러니까 앞니끼리 부딪히고 어금니는 안 맞고...

웅얼웅얼..얇은 스틱 같은 걸 내밀며 앞니로 물어봐요

물어요 놓고요를 강아지 훈련시킨 듯 반복하다가

대학병원 구강내과로 의뢰서를.. 아니, 다시 물어볼게요

안간힘으로 앞니에 힘을 줘서 꽉, 어.. 괜찮네 두 개가 지금 흔들리고 있거든요

지잉지잉 기계음과 함께 불안전한 이를 고정시키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밥알을 씹었다 딱딱 앞니가 닿으면서 어금니는 들뜬 듯 여전히 불편했다

조금은 나아진 듯도 하고 우물우물 대충 삼킬 준비는 되어 있다

 

이상하게 아픈 무릎만 스치고 부딪고 악, 소리치고

항상 그랬던 거 같다. 다친 곳을 꼭 다시 다치는 일

얼떨결에 손바닥으로 짚었는지 멍이 시퍼렇게 든 손으로 젓거럭질도 힘들다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내가 아프게 했던 이, 내가 아프면 생각이 난다

얼마나 아팠을까 억울했을까

느닷없이 넘어졌을 때처럼 억울하고 분하고 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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